통영 출신 위안부, 일본인 증언으로 존재 뒤늦게 밝혀져

김원창 기자 | 기사입력 2015/04/10 [18:33]

통영 출신 위안부, 일본인 증언으로 존재 뒤늦게 밝혀져

김원창 기자 | 입력 : 2015/04/10 [18:33]


나라현 해군비행장 건설현장 위안소에 20여명 존재해.....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나라현 해군비행장 건설현장에도 경남 통영 출신의 한국여성 20명 등 위안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일본 저널리스트이며 시민운동가인 가와세 슌지(68세)씨는 4월10일 오후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통영거제시민모임' 주관으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통영지역 출신 등 20대의 어린 여성 20여명이 당시 나라현 덴리(天理)시 야나기모토(柳本) 해군비행장 관할 안에 있는 위안소에서 위안부로 일했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가와세씨가 1975년 취재 당시, 재일 조선인 강정시(당시 67세)씨로 부터 증언을 들은 것으로, 위안소는 전쟁말기인 1943년 가을쯤, 해군 비행장 건설현장, 즉 해군 관할지역에 만들어졌다고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이후 이 증언은 해군 비행장 건설현장 지도와 역사학자의 지도 등을 비교하고 자신이 직접 취재한 바에 따르면 해군 관할지역에 있었다는 것이 확실한 것으로 군이 관리한 위안소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위안부로 끌려 온 여성들은 통영 출신 10명, 진주 출신 10명 등 모두 20명 정도가 모여 있었으며, 연령대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고 그 증에는 아이가 있는 유뷰녀도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고 합니다. 특히, 1945년 패전 이후에는 이들 군 위안부들은 먹을 것이 없어, 비행장 드럼통에 있던 메틸 알콜을 물에 타서 먹었다는 증언도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가와세씨는 이같은 사실을 나라현 지역신문에 1번 기사로 내 보냈고, 이후 여러 증언들을 모와서 3권의 책으로도 엮어 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덴리 시 시민과 역사학자, 사회운동가가 힘을 모아 조선인 강제 동원의 역사를 기술한 안내판을 만들어 덴리시립공원에 세웠지만 지난해 시가 안내판을 몰래 치웠다는 것입니다. 나라현 시민운동 단체들은 일본 당국의 역사 은폐를 규탄하며 안내판 원상복구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가와세씨는 오늘 기자회견을 하게 된 계기로 "역사를 은폐하지 않고 직시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면서 오는 4월18일 덴리시에서 집회를 가질 계획이라며 통영지역 시민도 함께 연대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한편 기자회견을 주선한 송도자 대표는 "안타깝지만, 당시 위안부들의 자세한 인적사항과 생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그분들이 동원된 시점이 1940년대여서 현재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의 제보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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