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예인들, 사라예보에 희망과 평화의 열매를 거두고 오다.(이달균 시인,"2019 사라예보" 공연후기)

이달균 시인,"2019 사라예보" 공연후기

김원창 | 기사입력 2019/02/28 [15:14]

한국 예인들, 사라예보에 희망과 평화의 열매를 거두고 오다.(이달균 시인,"2019 사라예보" 공연후기)

이달균 시인,"2019 사라예보" 공연후기

김원창 | 입력 : 2019/02/28 [15:14]

 

 

(이달균 시인,"2019 사라예보" 공연후기)

 

그리운 날엔 사라예보에 옵니다.

먼 바다 아드리아를 달려온 기적소리

멀고도 가까운 동방의 친구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축제의 사라예보

평화의 축제, 축제의 한마당

산맥에 내린 눈, 바람이 소망하고

축제의 종소리 울려 퍼지네~~사라예보!

<축제의 사라예보>-이달균 작사 이병욱 작곡

 

이 노래는 2007년 사라예보 윈터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주제음악으로 헌정한 것이며 축제 때마다 불리어 지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현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이 노래를 불렀다. 음악으로 하나 되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인가?

 

 

2007년 이후, 우리는 다시 사라예보에 왔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나? 이에리사가 세계여자 탁구를 석권한 곳, 유럽에서 보기 드물게 이슬람 문화가 지배하는 도시, 새롭게 여행지로 부상하는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단순이 이런 정보만으로 이곳을 찾진 않았음을 누구나 짐작하리라.

 

 

잠시 보스니아의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1914년 6월 28일, 밀라츠가강에서 흘러내린 작은 개울 옆 모퉁이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대공비가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했다가 절명한 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발발케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피해갈 수 없었던 2차 대전, 또다시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세르비아계와 비 세르비아계 간에 일어난 참혹한 내전, 그로인해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이런 전쟁의 나라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1984년 제14회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였고, 이때를 기점으로 ‘사라예보 윈터 페스티벌’을 시작하여 올해 35회째가 열렸다.

 

 

그렇다. 우리는 잊고 싶은 역사를 가진 이곳에, 지구촌 유일한 분단국 국민으로서, 예술인으로서 그 아픔을 함께 치유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건물 곳곳에 총상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걸어 다니는 사람만큼 비석(하얀비석은 이슬람인, 검은 비석은 정교회인)이 많은 도시를 보면서 새삼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느끼게 하는 도시 사라예보.

 

우리는 오기 전 몇 차례의 회합을 가졌고, 누구와 함께 어떤 구성으로 무대를 꾸릴 것인가를 고민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과 보스니아적인 것의 결합은 무엇일까? 그로인해 어떤 시너지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까를 심사숙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브라함 스타이치 윈터페스티벌 조직위원장과의 교감이 중요했다.

 

 

숙고 끝에 우리는 첫날 무대를 사라예보 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SAMIR LOKVANCIC 디렉터)와 사라예보 내셔널 합창단을 지휘할 상임지휘자 MUNIR MESANOVIC, 한국 지휘자 양승돈(충북도립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이 나누어 연주키로 협의하고, 오프닝곡으로 “초희” 허난설헌오페라 서곡을 연주하기로 하였다.

 

협연으로 이병욱(기타 협연, 어울림 대표), 강은일(해금, 단국대 교수), 김철(피리, 국립국악원정악단수석단원), 이달균(시인) 시낭송에 이어 “축제의 사라예보”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아름답고 장엄한 연주로 첫날 무대를 꾸미기로 했다.

 

 

그리고 둘째 날은 한국의 몸짓과 소리를 들려주기로 했다. 한국무용팀의 태평무(황경애), 입춤(성락선 외), 살풀이에 이어 최창덕(이매방류 춤 명인)의 승무, 광개토사물놀이(권성준 외)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사라예보 시민들과 참가 예술인, 동행 예술인(시인 이상익 외)이 함께 꾸미는 강강술래로 하나 되는 장을 마련키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허름한 호텔에 여장을 풀 때까지 우리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어떤 감동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내일 공연할 팀들은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12년 전과 별반 변한 것은 없다.

 

군데군데 총상이 보이는 건물, 트레베비치 산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은 여전하다. 그러나 한 가지 크게 변한 것은 집집마다 달려있던 LG전자의 실외기가 모두 철거되었고, 제법 자주 보이던 한국 승용차가 잘 보이지 않았으며 청바지에 긴 부츠를 신은 여인들의 옷차림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     ©김원창

 

국립극장은 그리 크진 않지만 나름 전통 있는 건물이다.

밖에서 보면 낡아 보이나 건물 구조며 음향시설 등은 상당한 격을 갖추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보조무대에서 사라예보 내셔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아직은 낯선 한국 선율 탓으로 특유의 꺾어짐과 떨림 부분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병욱의 지도로 차츰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그들 스스로가 즐거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양승돈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협연 순서가 연습되었고, 처음 듣는 해금과 피리소리를 신기해하며 현악과 관악이 어우러지는 현장을 보게 되었다. 첫날은 그런 기대로 밤을 새웠다.

 

 

2019년 2월 19일 드디어 공연 날이 밝았다.

동행한 일행 모두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오는 이들도 시내구경은 뒷전이고 공연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 했다. 온수가 잘 나오지 않는 호텔 사정이며 입에 맞지 않는 음식 탓을 할 겨를이 없었다.

브라함이 왔다가고, 디렉터가 찾아오는 등 그들도 분주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 이브라임인사말     © 김원창

 

광고가 얼마나 되었는지, 어떤 관객이 찾아올 것인지는 누구도 몰랐다.

차츰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과 맵시를 한껏 부린 여성 관객들이 찾아왔다.

간간이 한국인인 듯한 사람도 찾아와 자리에 앉는다.

이 정도면 대성황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브라힘이 특유의 달변으로 오늘의 의의와 동방에서 찾아온 예술인들을 소개했다.

 

 

이윽고 첫 무대의 막이 올랐다. 연주복을 입고 앉은 그들의 얼굴에서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연습한대로 오프닝곡인 허난설헌을 주제로 한 오페라 ‘초희’(이병욱 작곡)서곡이 시작되자 극장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긴장감으로 시작했으나 차츰 한국음악 특유의 흥이 돋워질 무렵 연주자는 물론, 관객도 함께 빠져든다.

 

 

노란 한복을 입은 강은일이 해금을 들고 앉는다.

처음 듣는 두 줄의 음색이 귓전을 파고들다가 가슴에 머물렀다가, 전설에 닿았다 다시 미래로 날아가는 한 마리 노랑나비처럼 극장을 휘어잡는다. 애간장을 녹이는 애절함과 능청과 해학이 깃든 소리, 강약 고저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솜씨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다만 앙코르를 외칠 수 없는 사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 피리 협연 장면     © 김원창

 

이번엔 피리의 김철이 자리에 섰다.

작은 대피리 하나가 이토록 큰 울림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가다니, 한국인인 우리도 감탄사를 자아낸다.

강나루를 휘젓고 가는 나그네처럼, 휘영청 보름달을 안은 여인네처럼 심금을 울리는 피리소리에 극장은 적막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휘자 양승돈과 함께 기타를 든 이병욱이 무대에 오른다.

양승돈의 희끗희끗한 머릿결과 그가 그려내는 유장한 선율, 그리고 이병욱의 손끝에서 춤추는 은물결의 현란함은 완벽한 조화를 이뤄낸다.

이병욱의 히트작 ‘검정 고무신’은 뜻을 몰라도 아픔에 겹고, 흐느낌으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달균의 시낭독이 시작된다.

이달균이 직접 쓰고, 한메 조현판이 써서 족자로 제작한 ‘사랑의 땅 사라예보, 희망과 평화의 아이를 낳으러 가자’를 읽을 때 관중은 숨죽이면서 동방의 시와 음성을 듣는다.

바람은 먼 바다 아드리아로 달리고, 비는 몰아쳐 밀리아츠카 강을 흐른다. 누가 있어 이 밤의 문을 닫을 것인가.

 

▲     © 김원창

 

“전갈자리를 지키는 별은 늘 그곳에서 빛난다/구름은 하늘을 다 가리지 못하고/비는 영원히 내리지 않는다/화산 폭발하고 용암 쏟아져 내려도/신은 종말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평화는 그렇게 오고 그렇게 전해진다. .....사라예보의 예인들이여, 발칸의 예술혼이여/코리아의 열정을 싣고 온 이들과 단칸살림을 시작하라/버려진 낙엽이 없듯, 버려진 사랑도 없다/먼 바다, 먼 하늘을 떠돈 여행자들은/이곳에서 쉬어가리니, 지친 몸을 쉴 헛간 하나를 허락해 다오//긴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본다/뛰노는 음악 속에서 시인은 붓을 들어/폐허 위에서 희망의 시 한편을 완성한다/사랑이라고, 사랑만큼 영원한 것은 없노라고”-(부분)

 

 

이제 마지막으로 축제의 사라예보를 연주한다.

우리가 익히 듣던 음악, 그들도 익히 들은 음악, 먼 곳에서 온 이들과 사라예보를 밝히는 예인들이 함께 부르고 연주하는 노래. 사라예보 합창단의 아름답고 장엄한 목소리에 실린 축제의 사라예보는 알프스 산맥을 넘고 있었다.

 

그날 그렇게 우리의 밤은 지지 않았고, 손은 서로 놓지 않았다.

다시 이브라힘이 무대에 올라오고, 족자에 새긴 시를 들고 포옹하며 뜨거운 감동을 낳았다.

오늘의 무대는 끝났지만 이 곳 저 곳에서 카메라가 켜지고 돌아갈 집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 내일을 기약했다.

 

▲ 갤라타다리위     © 김원창

 한국 무용이 펼쳐질 무대는 인근 극장이었다.

 눈이 내린다. 가루눈으로 시작한 것이 서서히 폭설로 변한다. 사라예보에서 보는 송이눈이 반가웠지만 찾아올 관객이 현저히 줄까 걱정되었다.

그 눈보라 속에서 시인 이상익은 1차대전 발발지로 가자고 했다. 내 기억으론 조금 떨어진 곳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까운 모퉁이였다.

작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앞에서 그날의 총성으로 또 하나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니. 모퉁이 건물 유리벽엔 그날의 참상이 그려져 있었다.

그냥 눈길 주지 않고 지나가면 모를 곳이다.

 

▲     ©김원창

 

우린 몇 장 사진을 찍었고, 근처 전쟁 박물관을 들러 극장으로 향했다. 걱정했던 것 보다는 관객이 많이 찾아왔다.

어제의 감동이 입소문을 탄 것이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현저히 줄었을 날씨였기에 “이만하다면 다행이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첫무대 황경애의 태평무가 시작된다.

나라마다 국가의 평안을 위한 춤을 추면 지구촌은 다 화평해지지 않을까. 우선 궁중의상이 예사롭지 않다.

장단에 따라 짧은 잰걸음과 따라붙는 바쁜 걸음, 뒤꿈치 들어 걷는 춤사위는 화사하고 우아하다. 호흡은 여리고 절제미를 갖췄다. 무대는 적막했다가 다시 풀어졌다가 춤사위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입춤 무대가 그려진다. 송락선, 윤희숙, 조민경, 김민지로 이뤄진 굿거리춤이다. 연지곤지에 날렵한 한복입고 산들산들 젊은 여인들이 그려내는 춤사위는 현지인들을 매혹시킨다.

 

장단이 정박으로 가면 눈길은 정면으로, 엇박으로 가면 눈길도 요모조모, 소고를 들고 뛰는 듯 걷는 듯, 우리 춤의 향연에 감탄사 연발이다. 다시 황경애의 살풀이가 시작되면서 다음 무대를 열어준다.

 

 

이제는 최창덕이 꾸미는 승무다. 한국 춤을 말하면서 승무를 빼면 앙금 없는 찐빵이다. 장삼에 가사를 두르고 고깔을 쓴 명인의 춤사위는 단연 압권이다.

 

어제 그의 연습을 보면서 땀과 흥이 따로 있지 않는 감동을 맛봤다. 춤과 재담을 고루 갖춘 춤꾼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타고난 예인의 몸짓은 가늠키 어렵다. 타령장단은 꿋꿋이 가고, 몸놀림은 활달하다. 기상도 좋고 의젓한 품새가 군더더기를 용납지 않는다.

어제 최창덕은 말했다. “난 우리 춤을 익히 아는 한국 일행들을 감동시키러 왔다.” 이는 우리 춤을 전혀 모르는 사라예보 사람들이야 격을 알 리 없으니, 당신들을 만족시키면 내 품격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란 자신감의 피력일 것이다. 다시 장고춤이 이어지면서 슬슬 고개의 정점에 다다른다.

 

 

이제 광개토 팀의 사물이 펼쳐진다. 장고, 징, 북, 꽹과리가 들려주는 흥겨움만 한 것이 어디 있을까. 우리 겨레의 사상과 정서, 성품과 기질을 이만큼 잘 담아내는 것도 없으리라. 징은 바람을 부르고, 북은 바람에 따라 운해를 펼치고, 꽹과리 장단에 따라 벼락이 울 때, 장구를 때리는 빗소리에 마당을 적신다. 천지의 부름에 따라 곡식이 움트고, 알맞은 조화에 따라 풍년이 든다. 절정에 이르면서 전립에 달린 상모가 돈다.

 

 

하늘이 돌고 땅이 돌고 사람이 돈다. 이 재간을 보고 손뼉 치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 사물 소리 잦아질 무렵 최창덕의 진새춤이 이어지고 이윽고 한 고비를 넘는다.

 

이제 마지막은 우리 모두가 연습했던 강강술래다.

사라예보엔 한국인이 단 한 가족이 산다. 한국인 청년 김관호의 통역에 따라 강강술래의 기원을 들려준다.

 

 

이 놀이는 이순신 장군, 오랑캐 침입, 추수감사 의식 등 여러 유래가 있지만 정설은 없다. 어쨌거나 둥글게 손잡고 추는 오래된 우리 민족의 화합 한마당이다. 사실 이 놀이는 대보름날 달을 보며 밤새 춤춘 가장 한국적인 축제의 춤이다. 강강술래 강강술래....느리게 시작한 가락은 조금 빠르게, 그리고 더 큰 원을 그리면서 점점 빠르게 불려진다. 손에 잡은 손은 무대를 내려와 어느새 관객과 손을 잡고 객석을 돌아가 다시 무대로, 무대에서 다시 객석으로 나중엔 숨을 헐떡이며 다 함께 로비로 나가 춤춘다. 그렇게 시작된 군무는 내리는 눈을 녹이고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 사이 눈을 그쳤고, 다들 땀을 닦으며 연신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상에 차려 놓은 한과 차로 그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아무도 타인은 없었다. 언어도 종교도 따로 일 수 없었다. 왜 전쟁인가? 웃는 이에게 어찌 총질을 할까? 떡을 건네는 이에게 모진 짓을 할까? 이제 그들은 그 흑역사를 지우고 싶어한다.

 

▲ 좌.이달균, 최창덕, 이병욱     © 김원창

 

 그래서 동방의 한 나라, 코리아의 혼을 이곳에서 펼쳐 평화를 노래하게 했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다 끝났다. 12년 전, 우리는 사라예보에 희망과 사랑의 씨앗을 뿌렸고, 이번에는 열매를 거두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이었다.

 

경제의 어려움으로 석탄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나라, 공공질서가 무너져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나라, 그러나 모스트라처럼 너무 아름다운 마을을 간직한 나라. 등등 더 많은 사연은 다음에 말하기로 하자. 여기서 우리의 추억담을 마감한다.

 

 

이번 페스티벌의 모든 장면을 영상화 해 주신 최경수 대표님, 수속 및 여행단장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해 준 어울사랑 윤호진님, 굳은 일을 도맡아 주신 김성규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