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안 전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사장을 보내며[1부]

김동진 전 통영시장 그간의 소회 밝혀

김원창 | 기사입력 2020/12/01 [18:32]

플로리안 전 통영국제음악재단 이사장을 보내며[1부]

김동진 전 통영시장 그간의 소회 밝혀

김원창 | 입력 : 2020/12/01 [18:32]

 

 

2010. 7. 1 본인은 제7대 통영시장에 취임하고서 두 가지 해결해야 할 난제를 안고 시정을 출발하였다.

첫째는 세수입으로 보전되지 아니하였던 과잉 세출집행으로 인한 590억 원의 노출되지 아니 할 빚이었고

둘째는 그 당시 설계가 막 끝난 520억 원의 건축비가 소요되는 국제음악당을 어떻게 완공하고 매년 70~80억 원을 소요되는 이 음악당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의 문제였다.

 

그 첫 번째 문제는 기회가 주어지면 다음 기회에 발생원인과 대처방안에 대해 기술 하기로하고 금번 이 소고에서는 독일인 플로리안이 7년 동안 통영 국제음악재단과 음악당의 대표(C.E.O.chief of excutive officer)로서 그 소임을 다하고 떠남에 있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공기관 수장으로 영입하게 된 경위와 본인과의 인연 그가 재임중 이룩한 업적 개인적인 소감 등을 기술코자 한다.

 

선정경위

음악당 건립은 2008년부터 거론되어 2009520억 원 규모로 현재의 위치에 건립한다는 설계안이 완성되었으나 구체적인 건축비 조달 계획(막연히 국비 50% 지방비 50%분당 계획만 세워져 있었음)과 경제성 확보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에 건축비는 그 당시 신임 지사가 추진하였던 모자이크 사업에 포함시켜 도비 120억 원을 확보하고 문광부 차관을 면담하여 2년에 걸쳐 260억 원의 국비를 확보함으로써 2013.6월에 역사적인 준공을 보게 되었다.

특히 소공연장(Black Box)은 경제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공연을 수용할 수 있도록 당초 설계보다 대폭 수정되었다.

 

객석 1300개와 최고 수준의 음향시설을 갖춘 국내 네 번째로 큰 음악당 준공에 즈음하여 인구 14만밖에 되지 않고 재정규모가 열악한 통영시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고민과 시름이 깊어져 갈 때 당시 재단 이사장이었던 이홍구 전 총리마저 사의를 표명하게 되어 더욱 난감한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새로운 이사장을 영입코자 통영 출신 인사 여부를 떠나 실업계 금융계 관계인사 등을 광범위하게 만나 영업활동에 나섰으나 어느 누구도 재정조달의 어려움으로 선뜻 응하지 않았다 제정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시장이 맡는 게 그 운용에 안정을 기할수 있다 하여 본인이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나 여전히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하여는 그 해답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그 당시 통영 국제 음악재단 사무국장이었던 김승근 교수(현 서울음대 교수)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던 과정에서 아시아에서 음악회 각종 공연 등을 가장 많이 경험해본 홍콩 아트페스티벌(Art festival)의 총감독(Excutive Director of H.K.Festival) 티사 호(Tisa Ho)를 만나보라고 하여 그 즉시 홍콩을 달려가서 티사 호를 만나보게 되었다.

 

진지하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고 재정지원은 책임질 테니 통영은 금세기 5대 현대음악 작곡가인 윤이상의 고향임을 언급하면서 현대음악(contemporary music)에 관한 한 아시아에서는 그 메카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와 아시아 최고의 음악제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꼭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티사 호는 본인의 부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두 가지를 제게 충고하였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가지는 음악제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유능하고 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C.E.O를 영입하는 일이며 그다음은 일정 수준(Global Standard) 일정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는 자문단을 설치하는 게 좋다고 하여 그 당시 스위스 루체른 음악감독을 끝내고 쉬고 계시던 토니 클라인(Tony Klein)을 소개해주었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티사호와 토니 클라인을 초빙하여 이 문제를 논의한 바 적극적으로 두 분이 도와줄 테니 우선 C.E.O를 선정해야 하는데 전 세계 음악인을 상대로 국제공모를 하면 그 어떤 결과가 있으리라 하였다.

 

이에 본인은 이 두 분을 중심으로 국제자문단을 구성하고 인터넷을 통하여 국제공모를 시도하기로 결심하고서 먼저 우리 내부에서 통영 국제 음악재단 이사회를 중심으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진규영(전 서울음대 교수) 재단 부이사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통영 현지 음악인 2인 외부인사 4 인등 7명으로 구성하였다. 곧이어 위원장 명의로 인터넷을 통하여 국제공모를 진행한 결과 12분이 응모하였는데 유럽 중심의 외국인 9분 국내 인사 3분이었다.

 

국내 인사 3분은 전직 영화감독 전직 지방문화회관 관장 등 비교적 음악과 무관한 분들이었고 유럽인 9분은 예술제 음악제 연주단체 등의 수장을 역임한 쟁쟁한 분들이었다. 선정위원회에서 선정 작업을 하는 동안 본인은 홍콩으로 날아가 티사호, 토니 클라인 으로부터 응모자에 개인능력과 프로필을 자세히 들었고 국제 공모안 공고 이후 이들 두 분이 그들의 개인 블로그를 통하여 유럽의 유력인사들에게 공모신청을 독려했다는 후문을 듣고서 본인은 사의를 표하였다.

 

귀국 이후 선정위원에서 동양문화를 이해하는 위치에 있고(플로리안은 일 본가네자와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챌리스트 겸 부감독으로 10년간 일했음) 정통 독일인이고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여러 경력 등을 참조하여 만장일치로 플로리안을 C.E.O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     ©김원창

 

이 지면을 통하여 아무런 대가 없이 통영 국제 음악재단 대표를 선정하는데 뒤에서 큰 노고와 충고를 해주신 홍콩의 티사호 스위스의 토니 클라인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새 국제 음악재단 출범 이후 국제위원회(국제자문그룹) 일원으로 여러 충언과 고언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본인의 재임기간 내내 음악회 등 주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준 그 열정과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그의 주요 업적

선정 이후 초장기 왜 하필 외국사람을 C.E.O로 선정하느냐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었으나 그가 차츰 통영에 적응하면서 그가 보인 비전 과열 성 일에 대한 성과로 이러한 시각은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오히려 부산문화재단 등에서는 국제공모를 통하여 외국인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서울의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에서도 프로그램 진행 리셉션 운영 등 여러 부분에서 통영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하였다.

 

2010.7. 취임 이후 시정에 임하면서 먼저 공직자에게 1) 세계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Think globally) 2) 행동은 지역실정에 맞게 (Act locally)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면서 이의 실천을 독려하게 되었다.

 

플로리안도 이에 발맞추어 첫째 어렵고 난해한 고전음악 특히 윤이상으로 대변되는 현대음악을 어떻게 현지와(localization)시키고 둘째 음악중심으로 통영의 문화콘텐츠를 관광과 어떻게 연계시키며 셋째 서울에 주제 하는 유럽 각국의 문화원과 연계하여 젊은 유망한 음악가를 어떻게 발굴하느냐에 대한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첫째방안의 구체적 실천대안으로 초. . 고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유명연주단이나 연주자가 통영에서 연주할 때는 본 연주 전에 반드시 무료로 학생들을 상대로 Lesson형 연주를 하게 함으로써 통영의 모든 초, 중등생들, 나중에는 거제의 중학생들까지 유명 연주자와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연주를 즐기는 event를 가지게 함으로써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였으며 이를 위해 그는 통영의 재부분의 초, 중등 교장선생님, 음악담당 선생님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였다.

 

 

그 결과 정명훈 씨가 두 번에 걸쳐 통영 학생들에게 무료 레슨 공연을 제공하였고 프랑스 국립오케스단,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도 무료공연을 제공하였다.

 

특히 조성진 공연 시에는 학부형들도 많이 참석하여 대단한 성황을 이루었다.

먼 미래를 바라보며 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야 할 일이 이런 게 아닌가 한다.

 

19세기 중반 영국을 중심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도시 빈민촌이 창궐하는 등 자본주의 병폐가 만연하던 시절 영국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거금을 기증하여 대영제국 박물관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언젠가는 어떤 천재가 나타나 자본주의 병폐를 치요할것이라 굳게 믿고 소 이 연구소를 운영해 나가던 중 칼 막스가 이 연구소에 들러 세기를 뒤흔든 대역저 자본론(Das Kapital)을 발표하게 했듯이 우리도 제2의 윤이상 탄생을 소원한다면 우리 세대는 이런 토양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유명 음악가에 연주를 듣는 수많은 학생 중 한두 명이라도 여기서 영감을 얻는다면 큰 수확이지 않겠는가?

 

둘째방안의 실천방안으로 그는 통영 국제음악제를 통영의 벚꽃축제인 봉숫골 축제와 굴 축제기간에 맞춰 3월 말 4월 초에 개최함으로써 통영경제의 큰 축인 관광과 연계시켰다. 또한 2017년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관광지구(T.P.O) 총회 시에는 문화와 관광이라는 주제 아래 하나의 세션을 주재하고 홍콩의 티사호와 스위스의 토니 클라인을 강사로 초빙하여 일곱 개의 세션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고 가장 인기 있었던 세션으로 평가받게 하였다.

 

셋째방안의 실천대안으로 서울에 주제 하는 독일문화원 영국문화원 이태리 문화원 등을 본인과 함께 방문하여 젊은 음악가 발굴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독일 문화원 주관으로 전액 독일문화원 예산으로 젊은 음악가를 위한 showcase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음) 영국문화원 이태리 문화원으로부터는 상당액의 후원금을 받아내게 되었다. 또한 한국의 진출한 벤츠사 등 독일 기업에 접촉하여 상당액의 후원금과 고급 벤츠 자동차 등 현물지원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통영 국제음악재단의 예산절감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2011년 통영 국제음악제 개막전 일본의 후쿠시마에 쓰나미가 덮쳐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고 특히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되어 전 세계적인 재앙으로 인식되었다. 그해 2월 개최 예정이었던 통영 국제음악제의 개막공연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챔버 오케스트라 연주로 예정된 상태에서 쓰나미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어가는 도중에 개막공연 48시간 전 갑자기 가까운 이웃에서 발생한 방사능 유출을 빌미로 그들의 불참을 통보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해 개막공연은 갈라 콘서트로 적당이 때웠으나 통영시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어 음악제 폐막 이후 이미 그들에게 지불된 항공료, 출연료 등 약 6천여만 원을 환불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들은 자연재해를 들먹이며 환불불가 입장을 고수하였다.

 

2012, 2013년 계속적으로 의회로 부터 질책을 받게 되었고 국제적 법적 소송으로 해결하려 하니 장기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소송비를 제외하고 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무척 어렵고 곤혹적인 상황에서 2014.1월쯤 리 임대표에게 모든 걸 상세히 설명했더니 한번 노력해보겠다 하기에 약 1개월 후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보내게 되었다.

 

잘츠부르크 현지에서 국제전화로 몇 가지 해법을 제시하기에 절반은 현금으로 환불받고 절반은 그들의 연주로 가름하겠다는 안에 서로 합의하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합의 이후 그들은 곧 2천만 원을 송금하였고 6개월 후 통영에서 The week of Mozart라는 주제로 일주일간 모차르트 곡을 연주해 주었다.

지금도 본인은 리 임대표가 아니었다면 이 문제는 미해결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의 유명 외국 연주자 공연은 에이전트를 통한 연주팀 매지저와의 접촉으로 주로 이루 짐으로서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리 임대표 부임 이후 그의 개인적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상당액의 예산을 절감하게 되었다. 구체적 예를 들면 케이블카 천만명 탑승 기념공연으로 조수미를 초청하게 되었을 때 리 임대표와 조수미 매니저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통상의 예보다 약 40~50%절감하게 되었고,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오케스트라 공연은 거의 대부분 그가 매니저들과 직접 접촉하여 에이전트 몫을 절약하게 되었다.

 

2016 유럽 출장 시 한국인 에이전트를 만났을 때 본인에게 리 임대표 때문에 밥 굶게 되었다고 엄살을 부리는 것을 직접 듣기도 하였다.

 

이런 점은 행정사무 감사 때나 회계감사 시에 별로 노출되지 않고 묻혀있었기에 본인으로서는 무척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윤이상 선생 유해 송환에도 그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2016년 가을경 국제위원회 개최지를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정하고 국제위원장인 본인을 비롯하여 토니 클라인 티사호 플로리안 등과 오스트리아 비엔나 린츠 독일의 베를린 하노바 등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동 중인 기차 안에서 4인용칸을 빌려 국제위원회를 개최하고 2017.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논의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논의 중 본인의 제안으로 윤이상 유해를 통영으로 송환하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고서 본인과 리 임대표가 각각 그 역할을 분담하여 진행하기로 하였다.

 

본인은 국내의 협의절차를 맡았고 리 임대표는 독일 정부 특히 베를린시 정부와의 협의를 맡아 이 일을 진행시키기로 하였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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